오늘 국회에서는 기어코 미디어 3법안과 금산분리완화법안 등이 강행 표결처리 되었다. 다수당이 다수의 힘을 발휘하겠다는데 어쩔 수 없는 것이 민주주의의 본령이기는 하다. 하지만 역시 미디어법과 금산분리완화법 모두가 반대 여론이 높은 점을 감안하면, 정치적 부담은 감수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이놈의 여론이라는건 정책과 법안은 금새 잊어버리니)

 그런데 미디어 3법안 중 방송법안 표결처리 시에 문제가 발생했다. 표결 도중에 의결정족수가 모자라서 재투표가 있었던 것이다. 이에 관하여 방송법 재투표 문제라는 포스팅이 있으니 참고할 수 있을 것이다. 국회 본회의의 일반 의결정족수는 재적 과반수 출석에 출석 과반수 찬성인데 - 오늘과 같은 상황에서 이것에 문제가 생길 것이라고는 도무지 상상도 하지 못했다. 다수당으로서는 무조건 소속 의원을 전부 소집해놓아야 했던게 아닌가. (그런데 사실은 다른 법안에서도 대리투표니 뭐니 하는 문제로 떠들썩한거 같다. 표결을 얼마나 한다고 그 동안 본회의장에 있지도 못하나.)

 나는 오늘 본회의를 방송으로 보지 못했지만, 대충 벌어진 상황은 추측이 된다. 아마 미디어 3법안 중 신문법안이 먼저 부의되었을 것이고, 이에 다수당 의원들이 앉아서 표결할 준비를 (일반 표결이므로 전자투표 방식을 취한다) 하고 사무처 직원들이 통로를 따라 내려오면서 숫자를 파악해서 전자투표기에 출석의원수가 표시되었을 것이다. (물론 이 와중에 의장석 주위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리고 압도적인 찬성투표로 가결. 그 다음에 다시 방송법안이 표결에 붙여져야 하는데, 별개의 법률안이므로 다시 출석의원수를 파악한다는 점을 간과하고 다들 자리를 비운게 아닐까? 아마 이랬을 것 같다. 이런 바보새끼들을 봤나.

 하여 법률안이 부의되었을 때 전자투표게시판에 출석의원이 145명으로 표시되었고, 그러자 의장이 재투표 선언을 하고 다시 부의를 해버린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솔직히 존나 한심스럽다. 미국은 양원 투표에서 일반적으로 voice vote를 하는데, 걔들도 표결 빠지는 애들 있고 좀 들락거리긴 해도 대체로 중요한 법안에 있어서는 거의 전부가 의석에 앉아 있다가 일일히 호명받고 aye or no로 대답한다. 미리 voting deal을 거의 해놓고 요식적으로 하는 절차인데도 이러는데 - 제후국의 국회의원이라는 넘들은 하여간에 표결도 하나 제대로 못하나.
 어쨌거나 국회법 상 의결정족수라는 것은 법률안을 표결에 붙이기 위해 필요한 출석인원수의 하한과 그 결의안의 가결을 위한 가결 찬성인원수의 하한으로 이뤄져 있다. 사견으로는 전자는 표결의 성립, 효력요건에 해당하는 것이므로 - 최소출석인원수의 미달인 경우에는 표결 자체가 당연 무효라고 보는게 논리적으로는 타당할 것 같다. 표결이 일단 성립, 유효한 뒤에야 그 가부결을 논하는 것이 타당하고, 후자인 가결 찬성인원수의 하한은 그 때 필요한 숫자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논리적으로 이번 경우에는 부결이라고 보기도 좀 힘들다. 다만, 대부분의 헌법학 교과서에서는 이 부분의 엄밀한 정의에 대해서는 자세히 다루지 않고, 강학상 일반/특별 의결정족수를 소개하며 이에 미달되는 경우를 다 "부결"이라고 설명한 경우가 대부분인것 같다. 그렇다면 애초에 출석인원수의 하한에도 미달한 경우 역시 부결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일까?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판례가 필요한 부분이다.


 다만 이러한 논의는 대체로 일사부재의 원칙을 적용하기 위해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일사부재의라는 것은 부결된 법률안을 동 회기에 재부의하지 말라는 원칙이다. (의사경제를 고려한 것이기도 하고, 소수자 보호를 위한 측면도 있다) 그렇다면 일반 의결정족수의 정의를 논할 때도 이러한 취지를 감안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표결에 붙일 수 있는 최소한의 인원수조차 모자란 것은, 표결에 들어갔으나 찬성표가 모자라서 부결된 경우보다 더 압도적인 측면이 있다. 그런데 전자는 표결이 무효이므로 다시 부의할 수 있다는 식의 해석은 아귀가 맞지 않는다.
 예컨대 원내 다수당과 소수당의 의석 차이가 아주 아슬아슬한 상황에서 소수당이 다수당의 정책과 반대되는 의안을 본회의에 제출한 경우, 다수당의 지도부가 반란표를 걱정하여 다수당의 의원 전원을 보이코트 시키기로 결정했다면 어떨까. (이런 꼼수와 또 그 꼼수에 대한 반대는 처음 있는 일도 아니다) 그렇다면 소수당은 계속 표결을 되풀이 할 수 있을까? 일단 부의가 의미하는 바를 생각해보자. 법률안의 본회의 부의는 법률안 제출 혹은 발의의 최종 단계에 해당하는 것으로서 - 다시 본회의 내에서도 최후의 최후로 거치는 것이 표결이다. 여기서 한번 부결이 되면 부의의 첫단계가 아니라 법률안 제출 혹은 발의의 첫단계로 되돌아가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표결을 되풀이 한다고? 말이 안된다.

 따라서 일사부재의 원칙 하에서는 다수의 보이콧으로 인한 의결정족수의 미달인 경우 역시 마찬가지로 부결로 보아야 한다. 의장이 본회의의 의사를 진행함에 있어서 질의, 답변, 토론을 충분히 했다고 판단하고 표결을 하기로 결정했다면 바로 그 순간 의결정족수를 판단할 일이고, 그것이 미달되었다면 어떤 식으로든 부결로 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쨌든 그 모든 문제와 상관없이 표결을 두 번이나 한 것은 분명히 절차적 하자가 있다. 첫번째 투표가 의결정족수가 미달이었다면 법문 그대로는 부결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고, 보다 더 엄밀하게 말하자면 (표결 시간에 제한이 있는 것도 아니니) 의결정족수가 확보될 때까지 표결을 진행했어야 하는 일이다. 통상적으로 의장이 표결을 선포하고 사무처에서 일정 시간 후에 전자투표기의 스위치를 꺼버리거나 하는 모양인데 (이 표결 시간이 그리 긴 것 같지는 않다. 실무적으로는 국회의장의 표결 선포 후 사무처 직원들이 통로를 따라 내려오는 정도의 시간? 거수투표가 횡행하던 시절의 관행이라고나 할까? 의장이 표결 종료를 지시하는걸까?), 그건 애초에 실수라고밖에는 설명이 안된다. 더 웃긴 것은 이제까지 정파적 이해관계 때문에 이에 관한 국회 규칙조차 확립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Posted by 말을 조심하는 措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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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안녕하십니까. 여기저기 떠돌다가 흘러들은 고시낭인입니다. 글을 읽다보니 궁금해지는 것이 있는데 여쭤봐도 괜찮을런지요.

    다름이 아니라, 의결정족수 미달을 부결로 설명한, 그리고 일사부재의를 소수자보호를 위한 것으로 설명한 헌법책이 어느 것이 있습니까?
    --뒤늦게 고칩니다. '의결정족수미달을 부결로 설명'은, 과반수출석이 이뤄지지 않은 것도 부결로 설명한 책이 있느냐는 질문이었습니다.--

    오해를 막기 위해 덧붙이면, 시비거는 것도 아니고, 논쟁을 하자는 것도 아닙니다. 저는 논쟁을 아주 싫어합니다. 제가 가진 책들을 뒤져봤는데, 찾을 수 없어서 그럽니다. 요즘 추세에 제가 좀 뒤떨어져 있거든요.

    2009.07.31 08:46 [ ADDR : EDIT/ DEL : REPLY ]
    • 전공자 분에게 확언하기란 참 어려운 일입니다...

      제가 헌법교과서를 거론한 부분은 의결정족수 부분밖에 없지요. 이에 관해서 일반 의결정족수의 규정 상 전단과 후단에 미달했을 때 각각 어떻게 효과가 달라지는지를 엄밀히 설명한 교과서는 없습니다. (하여 "엄밀한 정의에 대해서는 자세히 다루지 않"는다고 위에도 쓴 것이고)

      다만 정족수의 정의에 대해 소개하며 이에 미달하는 경우를 "부결"이라고 설명한 교과서들은 많습니다.

      예컨대 헌법학원론(정종섭,2006) p.814 에서 짧게 인용하자면 "법률안은 제작의원 과반수의 출석과 출석의원 과반수의 찬성의로 가결하고 이러한 정족수에 이르지 못하면 법률은안 부결되어 폐기된다"라고 하고 있습니다. 대체로 이 정도로 간략하게 언급하되, 부결된다라고 서술한 책들이 일반적인 것 같습니다. 전자를 불성립/후자는 부결 이런 식으로 나눈 서술은 본 기억이 없습니다.

      2009.08.01 18:20 신고 [ ADDR : EDIT/ DEL ]
    • 일사부재의의 의의에 대해서는 교과서들이 의사경제의 달성과 소수의 의사진행 방해를 막기 위해서라고 서술하는게 일반적입니다. 따라서 제 글을 보고 무슨 생각을 하셨는지는 대충 이해가 됩니다. (아마 객관식문제풀이를 한다면 저도 답을 고를 수는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의사경제의 달성은 그렇다치더라도 필리버스터의 방지가 반드시 소수자보호에 늘상 반대되는 것인가 하는 점에는 의문의 여지가 있습니다. 저지조항이 그렇듯이 하나의 제도가 늘 편면적인 기능만을 수행하지는 않으니까요.

      어쨌든 괄호 안의 내용은 교과서와는 무관합니다.

      2009.08.01 18:31 신고 [ ADDR : EDIT/ DEL ]
  2. 예 그러셨군요. 책을 제대로 본 게 오래되어서, 제가 모르는 무슨 논의가 있었나 싶어 순간 당황해서 여쭤본 것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2009.08.01 20:07 [ ADDR : EDIT/ DEL : REPLY ]
  3. 비밀댓글입니다

    2009.08.03 17:46 [ ADDR : EDIT/ DEL : REPL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