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스터 앤드 커맨더 1,2 (패트릭 오브라이언, 이원경 번역, 황금가지, 2008)

 혼블로워 시리즈의 완간에 조금 아쉬움을 느끼던 독자(...라고 쓰고 범덕, 로열네이비덕, 역덕 이라고 읽는다)들에게 오브리 & 머튜린 시리즈의 번역 출간 소식은 큰 기쁨이 아닐 수 없었다. 저 무리 가운데 나도 한 사람이었는데, 이제야 이 책을 읽었으니 기대감에 비하여 꽤나 게으름을 피운 것 같다. 

 혼블로워 시리즈에 비하여 오브리 & 머튜린 시리즈는 좀 다른 느낌이 든다. 혼블로워 시리즈가 포레스트가 한껏 투영한 영웅적 제독의 완벽한 대하 일대기라면, 오브리 & 머튜린 시리즈는 꽤나 잘 어울리는 콤비의 모험소설이라고나 할까. 혼블로워가 7월 4일 생이며 호레이쇼라는 이름을 쓴다는 설정을 생각해본다면 그가 영웅기의 주인공이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반면 잭 오브리나 스티븐 머튜린은 주인공다운 성품과 재능을 갖춘 동시에, 매우 인간적인 캐릭터로 묘사되고 있다. 어느 쪽이든 즐겁게 읽을 수 있지만, 미묘한 차이가 있다는 점이 꽤 마음에 든다. 혼블로워 시리즈를 열독한 이후라서, 또 다른 행장기적 영웅록이었다면 조금 물리는 감이 없지 않았기 때문이리라.

 두 성마른 (그리고 젊고 매력적인) 함장과 군의관이 만나게 되는 것이 1편의 주된 내용인데, 넬슨을 모델로 하면서도 빅토리아적 관점에서 넬슨의 모든 악덕을 다 교정시킨 형태로 구현된 혼블로워와 이 두 사람은 달라도 너무 다르다. 다만 혼블로워의 유일무이한 약점인 절대음치 겸 음박자불감증은 완벽히 교정되어서 이 두 사람은 현악 이중주 앙상블을 취미로 뭉친 사이니 (...) 앞서는게 없지는 않다.
 두 시리즈의 차이는 단지 캐릭터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포레스트가 묘사한 18세기 (늦게는 19세기까지) 로열 네이비가 (비록 혼블로워라는 영웅의 배경에 불과하더라도) 막강하고 (그건 사실이지) 유능하고 (응?) 심지어는 약간은 고결하기까지한 (어?) 해군이었다면, 패트릭 오브라이언이 묘사한 로열 네이비는 꽤나 세속적이고 "인간적"이다. 이러한 점은 아무래도 포레스트가 (아마 마한의 저서를 읽었을) 미국인이었던 반면, 오브라이언은 영국인 작가였기 때문이 아닐까.

 이런 해양역사소설을 번역하는 일은 늘 어려운 일인데, 황금가지는 역시 메이저 출판사답게 나름 깔끔한 결과물을 내놓은 것으로 보"였"다. 분권을 다시 하드커버로 장정하는 바람에 가격이 좀 비싸다는 느낌이 있었지만, 그것은 요즘 트렌드니까 딱히 이 경우만 유달리 더 비난할 일은 못된다.
 그런데 읽고 있으면 역시 약간의 노력이 있었음에도 부족한 부분이 눈에 많이 들어온다. 외국어 고유명사 표기에 관한 부분이야 끈덕진 떡밥이고 일일히 꼬집으면 내가 ghistory씨 같은 기분마저 들게 될 터이니 하나 하나 지적하지는 않겠지만, 지금 우리가 쓰는 관용례에도 맞지 않고, 영어식 발음 그대로 표기한 것 같지도 않고, 그렇다고 해당 언어의 발음대로 쓴다는 표준어원칙에도 맞지 않는 고유명사들이 꽤 많이 나왔다. 예컨대 대뜸 첫 페이지부터 메노르카 섬의 Port Mahon을 "마온"이라고 표기하고 있는데 이게 맞는 것일까? 영어 발음으로는 포트 마흔일 것이고, 스페인어 발음으로는 마욘이어야 타당할 거 같은데. 기본적으로 주인공이 영국 해군사관이고 로열 네이비의 전투기와 모험기를 아우르는 소설인만큼 익숙한 영어 발음으로 표기하더라도 하등 문제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 책에서 고유명사들은... (하략)

 범장선에 관한 기술적이고 전문적인 당대 용어들의 번역 역시 어려운 일이다. (현대 영어권 독자들은 물론 당대의 일반인들도 당혹스러워하는 전문용어들이 난무하니) 사실 서양식 범장선과 조범술의 전통이 없는 우리나라에서 이런 용어들이야말로 외래어 표기로 옮겨와도 충분하다고 생각하는데, 이번에는 또 무슨 친절인지 이 바닥의 순우리말 역어를 다 찾아서 번역해놓았다. 역자의 노력과 고심은 이해하지만, 굳이 이 바닥의 전문용어를 다 찾고 감수받아가며 번역해놓더라도 조범술에 대해 문외한인 일반 독자들이 "뒤 세로돛"이라는 용어와 "스팽커"라는 용어 어느 쪽을 본들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은 비슷하지 않을까. 솔직히 덕분에 그나마 미즌이나 로열 세일 같은 용어 정도는 구분하는 독자조차도 또 다시 혼란 속에서 범장선의 구조 요해를 살펴보거나 심중에 떠올리며 독서를 해야 했으니. 
 당대 해군에 관한 다른 번역들도 좀 눈에 설은 것들이 있었다. 견습사관을 수습사관으로 번역한다든가, 배의 사관들을 일률적으로 부관(이게 틀린 것은 아니지만)으로 번역해놓은 것도 좀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렇다고 현대 해군처럼 소위, 중위 운운하는 것도 우습지만)

 역주를 미주가 아니라 각주로 충실히 달아준 것도 굉장히 마음에 들고 (무슨 전문서도 아니고 주가 많이 달릴 일도 없는 소설에까지 미주를 쓰는 편집자들은 각성하라!) 독서에 큰 도움이 되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정작 달아야 할 부분을 지나친 경우도 눈에 띈 반면, 굳이 달아야할 필요가 없는 부분까지 주석을 단 경우도 있어서 조금 아쉽다. 예컨대 머튜린이 갓 함장으로 승진하여 견장을 단 오브리를 만났을 때 한쪽 견장을 다는 것을 잊어버린게 아니냐고 묻는 (머튜린은 완전히 문외한이니까) 장면이 있고, 그 질문에 오브리가 조만간 양쪽 다 달게 될 것이라고 능숙하게 받아넘기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런 부분에 주석이 없으면 이런 장면의 흥취를 고스란히 한국의 독자들이 느끼기 어렵다. 당대 로열 네이비에서 견장은 유일한 계급장으로 함장이 양쪽에 견장을 다는 것은 정식 함장이며 6년 이상 함장 복무를 하고 프리깃 이상을 지휘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반면 명부의 하위에 있는 신참 함장들은 한쪽에 견장을 달았고. 혼블로워 시리즈에서는 이 부분을 중령과 대령으로 번역했다. (지금은 사라진 계급체계를 현재의 사람들에게 설명해줘야 한다는 점에서, 이런 번역이 상당히 어렵다고 느끼긴 하는데 좀더 고민하는 번역이 없다는게 아쉽다. 대위니 소위니 하는 함선 사관은 전부 위관으로 번역하고 대신 선후임 관계를 밝혀 쓰는게 당대 체계와 가장 어울리지 않을까? 부함장은 부장으로 번역하는게 간결하면서도 오늘날 체계와도 어울리고, 함장은 계급을 밝혀야 할 때는 일률 영관으로 번역하여도 되겠지만 - 융통성을 발휘하면 중령 / 대령이 되는 것이고 - 본질적으로는 스쿠너 함장, 프리깃 함장, 전열함 함장의 식으로 쓰는게 당대 분위기에는 어울릴것 같기도 하다.)

 책 말미에 붙은 참조표도 은근히 상세한듯 하지만 들여다보면 부실하다. 범장선의 요해도도 들여다보면 퍽 부실한 편이고, 우선은 범장선의 분류부터 소개해주는게 좋지 않을까. (독자들은 브리그와 스쿠너 사이에서도 이미 혼란에 빠져 있을텐데) 도량형 환산표는 도움이 되겠지만, 1권의 말미에 붙은 환산표는 그야말로 과하기 짝이 없는 것이었다. 인치/피트/야드/마일이 미터법 환산으로 각 어느 정도인지만 밝히고 나머지는 독자의 암산 능력이나 계산기에 맡겨도 좋은 것이었는데. 오히려 쓸데 없이 장황하게 환산표를 수록하느라고 해양소설인 주제에 패덤과 노트의 미터법 환산을 누락했으니... 솔직히 좀 한심한 일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브리 & 머튜린 시리즈의 1편은 좋다. 너무 좋다. 왜 이런 책이 이제야 번역 출간된 것이더냐. 왜 나는 1편의 상권인 1권 밖에 사지 않아서 이 밤에 이토록 좌절감을 느끼고 있는 것이더냐. 흑흑. 사실 다 애정이 있어서 까는 거다. 설마, 황금가지 같은 메이저 출판사에서 1편 하나 번역 출간해놓고 시리즈를 접어버리지는 않겠지? 혼블로워 시리즈도 완간이 되었는데 흑흑.

 그리고 오브리와 머튜린은...아무리 생각해도 커플링 성립... 가능 아닌가? 으음...
Posted by 말을 조심하는 措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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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원경

    안녕하세요, <마스터 앤드 커맨더>의 번역자 이원경입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부족한 점이 많죠? 저도 통감하고 있습니다. 범선이나 역사 전문가가 아닌 제가 이런 대작을 번역하다 보니 필연적으로 모자란 부분이 많았습니다.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번역한다고는 했지만 능력의 한계는 어쩔 수가 없네요. 이 책을 번역한 것이 6년 전이랍니다. 햇병아리 번역가 시절이었죠. 그래서 무척 서툴렀습니다. 지금 보면 부끄러운 부분이 많아요. 범선에 관한 부분이나 직위 체계에 관한 부분을 여러 원서를 통해 조사하면서 이해했지만, 우리말로 옮기는 일이 쉽지 않더군요. 모형 범선 제작 전문가를 만나 조언을 구하기도 했지만, 그 분야의 전문가들도 명칭에 대해서는 통일성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제 나름의 원칙을 세워 최대한 우리말로 옮겼던 거랍니다. 위에 언급해주신 spanker 정도는 '스팽커'로 음역해도 괜찮겠지만, 수없이 등장하는 온갖 돛과 돛대를 전부 음역하면 글을 이해하기가 너무 어렵다고 판단했어요. 예컨대, 챕터 2에서 범선에 관해 설명하는 부분이 나오는데

    2009.08.28 09:57 [ ADDR : EDIT/ DEL : REPLY ]
  2. 이원경

    거기 나오는 돛을 전부 음역해서 표기할 경우 너무나 혼란스럽습니다. 그래서 어지간한 독자가 이해할 수 있는 우리말로 옮기려고 골머리를 싸맸습니다. 물론 범선 마니아들의 비난을 들을 줄은 예상하고 있었습니다. 마니아뿐만 아니라 일반 독자까지 아울러야 하는 번역자의 입장을 이해해주시면 좋겠습니다. 널리 혜량해주세요....
    물론 좀더 치밀하게 번역하지 못한 점은 저도 인정합니다. 앞으로 이 시리즈를 더 번역할 기회가 생기면 그때는 좀더 깊이 조사하고 전문가의 조언을 구하도록 하겠습니다.

    2009.08.28 10:02 [ ADDR : EDIT/ DEL : REPLY ]
  3. 이원경

    그리고, 최근에 이 시리즈의 2권인 <포스트 캡틴>이 나왔습니다. 1권에서 빠졌던 '해상 용어 정리'도 들어갔는데, 여기서도 몇 가지 오류가 눈에 띌 거예요. 제가 보낸 원고와 교정자가 수정한 원고 사이에서 발생한 차이를 손보지 않아서 생긴 오류도 있고, 제가 실수로 잘못 넣은 것도 있습니다. 3권인 <서프라이즈 호>에서는 수정해서 내도록 하겠습니다. 범선 마니아들이 원하는 만큼 완벽한 번역은 아니지만, 저도 번역가로서 양심을 걸고 최선을 다해 번역하느라 이 세 권을 번역하는 데 2년이 넘게 걸렸답니다. 앞으로도 문제점이 눈에 띄면 언제든 기탄없이 지적해주세요. 제게는 뼈가 되고 살이 되는 지적이니까요. 감사합니다.

    2009.08.28 10:06 [ ADDR : EDIT/ DEL : REPLY ]
  4. 이원경

    참고로, 제게 개인적으로 문의하거나 지적하시고 싶으신 것이 있으시면 제 블로그인 http://blog.naver.com/parrot95 에 글을 남겨주세요. 언제든 최선을 다해 답변해 드리겠습니다.

    2009.08.28 10:12 [ ADDR : EDIT/ DEL : REPLY ]
    • 허걱; 그래도 번역에 심각하게 문제가 있는 그런 것은 전혀 아니었으며 (비록 애정어린 비판을 날렸지만) 부드럽게 읽는데 하등 문제가 없었습니다...

      어쩐지 조금 부끄러워지는군요. 독자 여하의 취향차를 제외한다면 이원경님의 번역이 비판받을 여지는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 오역이라든가 중역이라든가 비문이라든가 하는 근본적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었고, 다만 몇 가지 아쉬운 점이 있었던 것 뿐이니까요. 그 문제의 또 상당 부분은 편집자나 출판사에게도 책임이 있었던 것이고.

      이런 외진 소굴에까지 찾아오셔서 피드백할 수 있다는 점이 역자의 성실함과 넓은 도량을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독자의 한 사람으로서 좋은 번역자를 만났다는 즐거운 기분이 듭니다.

      p.s. 2권이 나온다니 크게 기쁩니다. 그러면 이 시리즈의 완간을 기대해도 될까요? 총 19권이 (기억이 맞나?) 될 막대한 분량이 아닌지...

      2009.08.28 23:30 신고 [ ADDR : EDIT/ DEL ]
  5. 이원경

    저는 이 책에 애정을 가져주시는 분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기쁘답니다. 선생님 말씀대로, 애정이 없다면 이런 글도 쓰지 않으실 거예요. 저도 이 시리즈를 모두 번역하는 것이 꿈입니다. 하지만 그 꿈이 이루어지려면 책의 판매가 어느 정도 받쳐줘야 하는데, 생각보다 판매가 부진하답니다. 판매부진을 감수하면서 이렇게 방대한 분량의 소설을 낼 출판사는 찾기 힘들 거예요. 오브리와 머투린을 지극히 사랑하는 저로서는 너무나 안타까운 일이랍니다. 물론 앞으로 어찌될지는 두고봐야겠지만, 현재로서는 3권인 <서프라이즈 호>까지만 나올 것 같아요.

    2009.08.29 08:48 [ ADDR : EDIT/ DEL : REPL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