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취재에 쓰는 글들은 조금씩 길어진다. 글밥을 먹는 것도 아니고, 글발을 키울 것도 아니고, 어디 이름을 팔 일도 없으며, 그럴 재주도 없으니 별 가치 있는 블로그는 아닐진대 일기장에 적기에는 오른손을 혹사시킬만큼 긴 생각들만 주절거리고 있으니 난삽한 글이 길어지기만 한다.  그런데 길게 쓰는건 아무래도 바이트의 낭비다. 읽는 이 없으니 곤욕스럽지는 않겠지만, 폐를 끼치지 않는다는게 유일한 의의인 글들을 쌓아놓는게 무슨 보람이 있겠는가.

 그래서 다시 짧은 글로 돌아가자.

 조대가 읽은 2009 올해의 책 (소설 부문)을 수상한 "플레바스를 생각하라" (물론 2009년말에 공식 선정 절차를 거치진 않았다. 3초 전에 선정했다)의 작가 이언 뱅크스 처녀작 "말벌공장"을 읽었다. 뭐랄까. 책은 - 처녀작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 충분히 착란적인데, 솔직히 "플레바스를 생각하라"를 먼저 읽었기에 망정이지 이 처녀작을 먼저 봤다면 작가의 앞날을 쉽게 예측하기 힘들었을듯 하다. 권말의 '해설'에서 평단이 이 작품을 위악적이라고 평했다는 점도 어느 정도 이해가 된다. 

 광인을 일인칭 화자로 삼은 작품들은 뭔가 독특한 맛이 있는데 특히 그런 글을 꾸덕꾸덕하게 쓰는 재능은 영국 작가들이 선두에 있는 것 같다. 딱히 순문학뿐만 아니라 "핑거포스트", "아주 특별한 요리 이야기", "고문하는 요리사" (그런데 마지막 이건 공쿠르상 수상작인데 -  영국 작가가 아니던가?) 같이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작품들이 영국에서 나왔다.
 그 광증이 가장 현저한 책 중 하나가 이 "말벌공장"이다. 정말 심했다. 사실 광인의 글은 어찌 보면 간단할지도 모른다. 작가와 같이 예민한 감수성의 영혼들이 그 독특한 부분을 최대한 활용해서 본인의 광증을 투영하면 될 수도 있고, 좀더 간단하게 작가가 미쳐버리면 그만일 수도 있다. 사실 문제는 오히려 그런 광기의 글을 독자들이 읽을 수 있고, 읽을 마음이 들게 소화해내는게 어렵다. 우리 독자들은 아직 정상적인 논리 구조로 살아가는 평범한 영혼이기 때문에 광인의 글과 논리를 "납득할 수 있을만큼" 전달하는게 진정 어려운 부분인 것이다.

 "말벌공장"의 필력은 그런 어려운 일을 이뤄냈다. 사실 작가의 진정한 재능은 SF에서 빛을 발했다는 생각이 들지만 이 책은 읽어볼 가치가 있다. 처녀작으로서 딱 이 한 권만 있었다면 흥미와 당혹감을 반반씩 느꼈겠지만, "플레바스를 생각하라" 등이 받쳐주고 보니 역시 작가의 재능이 엿보여서 재미있었다. 다소 부러 위악적으로 썼다는 생각은 피할 수 없지만.

 다만 이 책은 내용도 내용이고 보니 발행부수도 적은 것 같고, 이미 시중에서 구하기 어려운 분위기다. 사실 메이저 출판사에서 이런 단행본으로 내놓을 작품은 아닌데 번역 출간된 것을 보면 - 어쩌면 이언 뱅크스의 라이센스를 일괄 구매 하기라도 한 것일까나. (열린책들이라 그럴싸한 추측이다)
Posted by 말을 조심하는 措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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