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군자
카테고리 소설
지은이 장경 (로크미디어, 200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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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월 후반 즈음에 읽은 책정리. 독후감도 정신 부스러기나마 모아야 쓸 수 있는 것인데, 워낙 컨디션이 안좋으니 (심지어 잠도 오지 않는다) 가볍게 정리할 수 있는 작품부터 골라보자. 요즘은 도통 무협소설을 읽지 않는데, 굳이 이 작품에 손이 간 것은 오로지 "장경이 '그런 소설'을 썼대"라는 오묘한 반응을 접하고 흥미가 일었기 때문이다. 

 읽고 난 나의 감상도 오묘한 수준을 벗어나지 않는다. "장경이 '이런 소설'을 쓰다니!" (느낌표를 넣었다) 
 솔직히 아주 크게 실망했다. 로크미디어라고 하면 내 편견에는 지나치게 게토화된, 장르문학의 아주 어린 독자들에게 영합하는 작품들을 출간하는 출판사라는 이미지가 있다. 그 출판사의 영향 때문인지 몰라도 장경이 신무협운동(시대? 어쨌든 이런 '사조'가 있었음을 분명히 인정하고 가자)으로 보여준 작품의 수준에도 현격히 뒤떨어지는 퇴보작, 태작이 나왔다. 비슷한 시기에 출간된 "철산호"도 혹평을 받고 있다 하는데, 같은 출판사에서 나온 작가의 근작 "산조"에 대해서도 큰 기대를 품기 어렵다.

 사실 1권만 읽고 던져버리지 않은 것도 어찌 보면 "장경이 이런 작품을" 이라는 곤혹스러움 반, 웃음 반의 모순된 즐거움이 약간 있었기 때문이고, 하여 "일부러 이런 글쓰기를 노리고 쓴게 아닐까?"라는 기대감이 약간이나마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끝까지 읽어도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진지하게 쓴 태작", "노력을 다하여 쓴 무난한 게토 소설", "캐릭터조차 잡아나가지 못하고", "청산되었다고 보는 구무협의 악취까지 희미하게 품은" 작품이고 보면 호의고 기대고 남아있는 것이 전혀 없게 되었다.

 웹무협도 이제 황혼기로, 양산형조차도 뭔가 막다른 곳에 봉착한 것 같은 무협 장르에서 새로운 돌파구를 어떤 식으로 개척할 것인가 하는 과제는 모든 작가들에게 주어진 숙제라고 보는데, 독자의 한 사람으로서는 사실 '출판시장의 판도'와 맞물려 이제 무협의 종말을 선언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회의적인 생각이 들기도 한다. 실제로 필력이 녹슬지 않은 많은 무협 작가들(신무협운동의 주축이었던 작가들)이 무협 장르 밖으로 나가는 경향도 부정할 수 없다. 

 별론이지만 무협의 미래를 암울하게 만드는 '출판시장의 판도'란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1. 대여점시장조차 망해가는 시대 하에 장편 무협을 수용할 수 있는 시장이 축소되었다.
 -구무협은 물론 90년대에도 5권 정도면 적절한 수준의 "무협지" 길이라고 여겨졌으나, 오늘날은 그렇지 않다.
 -긴 작품이 구축되는 것은 장르 밖에서도 명징한 경향인 바, 과거 소설시장의 주류였던 대하역사소설 쪽도 요즘엔 그 영화를 찾을 수가 없다.

2. 대중문학시장에서 소설의 주 구매, 구독층은 20대 여성이다.
 -무협장르는 어필하기 어렵다.

3. 구무협의 자기복제성을 부정한 신무협은 기실 구무협의 장르룰을 철저히 활용하였으나 한계에 봉착했다. 이제 우릴 것도 남지 않은 것 같다.

4. 양산형으로 대표되는 웹무협 역시 대여점시장의 위축과 함께 몰락하고 있다. 이미 오늘날 오락의 중핵은 텍스트가 아닐지도 모른다.

 사실 개인적으로 신무협운동의 작가群 가운데 장경은 그리 중요한 작가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어찌되었든 그 시대에 좋은 작품을 썼던 작가가 이제와서 이런 작품으로 뭔가를 모색하고 있다는 점이 과거의 독자들을 참 씁쓸하게 만든다. 분명히 '모색'은 있으나 '개선'은 없는 작품이 아닌가. 시장의 동향에 따라 "로크미디어" 같은 출판사의 경향을 따라가면서도 전혀 재미있지도 않고, 거장답게 구무협의 작풍을 희극화하는 센스조차 보이지 못하고 있다. 다만 남은 것은 열화된 "신무협"과 경험치가 많아서 레벨이 높은 문장력 뿐. 그 문장으로 차라리 대놓고 "구무협"을 복제해봤다면 이만 못했을까.

 1권을 읽으면 느낀 아이러닉한 웃음이 마지막에 이르러서는 씁쓸하기만 하다.

 좌백 역시 작품 세계를 훑어보면 위기가 있었고, 신무협을 던져버리고 나중에는 무협 장르에 대한 고뇌조차 내려놓고 비적유성탄 같은 작품을 세상에 내놓아 독자들을 놀라게 만들었다. 그러나 그것은 작가의 내적인 모색이 아니었을까. (모색이든 포기든 간에 어쨌든 작가가 혼자서 벌인 일이다) 장경의 마군자는 좌백의 금강불괴와 비슷한 느낌이 희미하게나마 있는데, 그 느낌의 원천이 내적 모색이 아니라 시장에 대한 눈치라는 점에서 읽는 나마저 무안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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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말을 조심하는 措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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