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걷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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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김정률 (로크미디어, 20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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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금 거창한 부제가 붙은 단편선. 호오가 갈리는 작가들이 섞여 있었기 때문에 망설였다. 수록 작품 중에는 이미 웹공간을 통하여 공개된 것도 있다. 그래도 몇몇 작품들은 다시 읽어도 좋았다. '경계문학'이라는 부제에도 불구하고 이 단편선은 장르문학 단편선이고, 수록 작가들도 무협과 판타지 장르에서 이미 경지를 구축한 이들이 대부분이다. 따라서 이 작품선을 읽는 것은 큰 호사가 되어야 하겠지만, 사실 약간의 좌절감을 느끼게 한다. 무협과 판타지 장르에서 단편이라는건 이렇게도 어려운 도전인 것일까. 단편이라는 제약 때문에 우화나 동화에 가깝게 애를 쓴 작품, 평소의 작풍을 희생시켜버린 작품들이 눈에 밟힌다. 작가 모두가 원하는대로 써보시라고 촉탁하면 (창작의 모진 고통을 감내해야겠지만) 더 훌륭한 장편들을 얼마든지 쓸 수 있는 해당 장르의 달인들인데, 기운 빠지고 괴로워하며 납기일을 맞춘듯한 작품들도 보였다. 판타지 단편 쪽은 좀더 쉬울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음에도.

 이 단편선 중에 제일 돋보인 작품은 이재일의 "삼휘도에 관한 열두 가지 이야기"일 것이다. 장편으로 썼다면 더 나았을 내용이라는 생각은 변함 없지만, 무협이라는 장르의 감각과 흥취를 가장 잘 살린 단편이었다. 기실 도서 추리물 형태를 약간 변용했기 때문에 단편으로서 더 적절한 내러티브를 만들어냈다고 여겨지기도 한다. 어쨌든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시 길어지긴 길어진다. 세계관의 설정이 불가피한 장르문학에서는 '새로운 세상'을 작은 용기에 담아내는 일이 이렇게 어려운 것일까.
 
 반면 SF나 공포문학 쪽은 단편으로도 좋은 작품들이 왕왕 나온다. "인카운터"는 SF로 분류할 수 있을까? 구조나 내용의 독특함보다 작가의 필력이 돋보인다. "느미에르의 새벽"은 정통 SF에 가까웠고 읽다보면 과거에 읽었던 다른 SF 외국작가들의 작품들이 몇 개 머릿 속에 떠올랐다. 하지만 역시 SF 장르에서 가장 중요한 신선함이라는 부분이 조금 아쉽다. 구성 형식은 약간 베르베르의 느낌이 나고, 주인공들은 "플레바스를 생각하라"와도 조금 비슷하고 (물론 전혀 다르지만 어디까지나 느낌이), SF가 주는 경이감은 다소 "프로스트와 베타"를 읽고 느낀 그것과 유사했기 때문이다. 뛰어난 필력과 좋은 구성이 갖춰져있었지만 압도적이지는 않았다. 내 기대심이 너무 큰 것도 한 몫 했으리라.

작품군 내에서도 개인적으로 호오가 엇갈리는데, 나머지 작품 가운데 "이계의 구원자", "마그니안", "월아 이야기"는 범작이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저런 스타일의 단편도 세상에 존재한다는 것을 부정하진 않겠지만, 짧은 분량 안에 극적인 이야기를 응축시켜서 카타르시스를 만들어내길 원하는 장르문학 단편 독자들의 기호에 부합하지는 않는다. "이계의 구원자"는 교훈이 있는 우화의 판타지적 변용인가? "월아 이야기"는 흔하게 접하는 몽유담인데 꽁트에 가까웠다. "마그니안"은 뭐랄까...흠 잡기 어려운 그냥 소설인데, 어쩐지...돋았다. 하긴 이 작가의 작품은 대체로 그냥 돋는다. 로망이 넘쳐서 그런 것일까나. 그리고 범작 가운데 유독 눈에 밟히는 졸작은 "앵무새는 단지 배가 고팠을 뿐이다"였다. 풍자소설이라고 하기엔 풍자가 약하고, 조크도 부족하고, 쓸데 없는 사설은 많은데 이야기를 관통하는 발상은 빈곤하다. 하지은은 "얼음나무 숲"으로 유명해졌고 나도 그 작품은 재미있게 읽었지만, 너무도 쉽게 한국 장르문학의 대표 작가군으로 떠오른 것 같다. 차기작에서 뭔가를 보여주지 못한다면 그저 스쳐 지나가는 이름에 불과할지도 모르는데, 일부 독자들은 평가가 너무 후한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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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말을 조심하는 措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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