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들을 위한 여름

저자
에드워드 J. 라슨 지음
출판사
글항아리 | 2014-06-02 출간
카테고리
역사/문화
책소개
1997년 퓰리처상 역사 부문 수상작과학과 종교의 전쟁 스콥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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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화론 재판의 서막을 열었던 스콥스[각주:1] 재판(위키피디아 링크: 국문 영문, 엔하위키 링크)을 깊이 있게 다룬 논픽션이다. 1997년 퓰리처상을 수상했다고 하나, 개정판을 번역 텍스트로 삼았던듯 비교적 최근의 경향도 다뤄지고 있다. 단순히 1920년대의 스콥스 재판만을 세밀하게 묘사한 다큐멘터리 타입의 논픽션은 아니다. 재판 전후 기독교 원리주의와 진화론이 상호간 어떻게 자웅을 겨루었으며 미국 사회의 태도는 어떤 식으로 변하여왔는지 통사적으로 다루었다. 또한 스콥스 재판에 관한 사후 역사적 평가를 메타적으로 비평하여, 이 재판이 어떤 식으로 양쪽 진영에서 이용되었고 현재 미국의 가치관에 반영되었는지 밝혔다.


 따라서 이 책의 서지정보는 자연과학 분류로 등록되어 있으나, 엄밀히 말해서 역사철학, 역사학, 헌법학의 틈바구니에 또아리 틀고 있는 책이다. 진화론과 창조과학에 대한 상호 비평적 논증은 배경지식으로 필요한 수준에 한하여 기술되고 있다. 그 부분은 따로이 책을 한 권 쓸만큼 방대한 분량이기 때문이리라.


 모든 좋은 논픽션이 그러하듯 이 책도 통념을 흐물흐물하게 녹여버리는 좋은 용해제로 작용한다. 비 기독교적 전통에서 쓰여진 인텔리의 논픽션은 기독교 원리주의에 대한 비판적 관점을 피하기 어려움에도, 저자는 최선을 다해 공평무사한 관점을 견지하고 있다. 이 책이 녹여버린 통념 중 하나는 단면적인 윌리엄 제닝스 브라이언의 인물관에 대한 편견이다. 미국 혹은 태평양 건너 비 기독교 국가인 한국에서 스콥스 재판의 주요 원고측 인물인 브라이언은 20세기에 마녀사냥을 시도하는 광신적인 종교재판관처럼 여겨지지만, 이 책은 이 흥미로운 인물을 깊고 풍부하게 묘사하고 있다. 브라이언이나 남북전쟁 이후 미국의 인민주의(Populist) 전통에 대한 이해가 거의 없는 한국에서는 이런 단순한 史實 기술도 상당히 신선하다.


 당연히 스콥스 재판이나 진화론 논쟁에 대한 20세기 초부터 현재까지 미국의 통사적 경향도 충실히 기술하고 있다. 특히 책 자체가 재판을 소재로 다뤘기 때문에 이 논쟁이 미국 헌법사적으로 어떤 가치가 있었는지 기술하고 있어서 개인적으로 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다만 번역본에 한정하면 역시 아쉬운 점들이 많다. 역자는 한유정이라고 하는 분인데, 학제간 지식이 풍부하지 않으면 번역하기 어려운 굉장히 책이기는 하지만 헌법 쪽이든, 생물학 쪽이든 군데 군데 돌처럼 씹히는 오역이나 아쉬운 번역이 자주 남아 있었다. 문장 자체도 매끄럽지 못한데, 아무래도 비문 문제보다는 너무 직역에 치중해서 벌어진 문제라고 본다. 그렇다면 이 번역의 문제에는 편집자의 책임도 있는 셈이다. 이 책은 "글항아리" 출판사의 걸작 논픽션 시리즈의 8번째 책인데, 한권의 번역이 이렇게 아쉬우면 시리즈의 다른 책들을 쉽게 독자들이 집어들리 없다. 



Trivia:


 스콥스 재판의 윌리엄 브라이언은 재판 후 며칠만에 급사했지만, 결국 사후에 그의 이름을 딴 브라이언 대학이 재판이 열렸던 데이튼에 설립되었다. 이 대학은 원리주의 기독교에 기반한 교육을 하고 있으나, 어쨌든 설립의 기초가 된 스콥스 재판에 관한 막대한 자료를 보존하고 있는 기관이기도 하다.


 이 법 자체는 실효적으로 적용될 것을 기대하지 않은 일종의 상징적 조항이었으며, 반대로 진화론자들이 벌인 재판도 실제로 기소가 이뤄진 것이 아니라 법안 자체를 공격하고 되도록 연방최고재판소에 회부하여 헌법 유권적인 판결을 끌어내기 위한 본보기 소송이었다. 즉, 진화론자들이 이 소송을 유도했다.


 데이튼에서 이 소송이 열린 주된 동기는 (주민들 다수가 브라이언을 환영했고, 진화론에 경사된 고장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일종의 마을 부흥, 홍보라는 실용적인 이유였다. 엄청나게 외진 동네였던 것 같다. 주민들의 소망과 달리 이 재판은 오랫동안 원숭이 재판이라고 불리며 데이튼과 테네시 주의 흑역사로 남는 것 같았지만, 어쨌든 대학교 하나가 생겼으니.


 이 재판의 피고인이자 그 이름이 영원 불멸 속에 남은 스콥스는 이런 재판의 피고인들이 다 그렇듯이 철저히 주변인으로 남았다. 데이튼에 도착한 피고인측 변호인들에게 이런 해프닝이 벌어질 정도였다. 도착 직후 한 변호인은 그들의 트렁크에서 누가 짐을 꺼내는 것을 보고 "어이, 젊은이. 그 가방은 왜 건드리는 거야?"라고 외쳤다. 그러자 다른 변호인이 수습에 나섰다. "박사님, 괜찮습니다. 저 사람이 바로 스콥스예요." (p.217)


 


  1. Scopes Trial에 대한 우리말 표기는 "스코프스"와 "스콥스" 두 가지로 통용되고 있다. 이 책은 스콥스로 옮겼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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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말을 조심하는 措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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