語骸2008.11.25 07:59

  글을 쓰는 데 발분이 중요하다 생각한다. 단지 감정이 치솟아 오르는 것만이 아니다. 물을 병에 따르다가 흘러 넘치듯 텅 빈 속에 내용이 점점 차고 차올라 일순 주둥이에 넘쳐서 흐를 때, 그 넘쳐난 자국이 좋은 글이라고 생각한다. 내 속 또한 빈 그릇인데 그 깊이가 얕아서 시덥지 않은 분량의 내용도 버거워 이리 저리 물을 흘리고 다녔다. 그래서 지금 내 주위에 남긴 자국들은 수전증 걸린 나으리가 조반 물림한 죽사발처럼 지저분하고 부족한 찌쩌기로 어지럽기만 하다.
  발분적인 글을 계속 물과 병의 관계에 비유하여 말하자면, 글을 쓰는데에도 그릇의 크기와 그릇의 내용물이 가장 중요하다. 내용이 아무리 좋은 것이라고 한들, 말하자면 좋은 술이나 귀한 향유를 쏟아 붓는다고 한들, 그릇이 간장 종지에 지나지 않으면 그 그릇을 가득 채우고 넘친 모습은 그저 설익어보일 뿐이다. 더구나 깊이가 얕으니 충분히 내용이 채워지지 못하고, 부족한 글이 너무 자주 넘친다. 깊이가 장독대의 항아리만치 깊은 그릇의 글쓰기는 아주 오랫동안 채워넣고 채워넣은 끝에 가까스로 넘치게 한 고된 보석과 같은 한 방울의 글이 나온다. 그 글은 이미 흘러넘친 내용이 아니라 흘러넘친 내공이다.
  그리고 그릇에 붓는 내용물이 중요하다. 아무리 크고 멋진 장독이라 한들 그저 분뇨만을 끊임없이 부어넣고 퍼내고 한다면, 그 큰 그릇은 그저 똥장군에 지나지 않는다. 똥장군의 터진 주둥이 주위에 말라붙은 오물과도 같은 글을 누가 읽고 싶어할 것이며, 감히 다른이들에게 보여줄 용기는 어디서 낼 수 있단 말인가.
  글이란 참으로 어려운 것인데, 내 그릇은 은행알만한 중국 술잔에 불과하고, 그 속에 아주 가끔 내가 채워넣는 내용물은 수돗물처럼 작위적이고 가증스럽게 눈막음을 해둔 저급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 곳에서 흘러넘친다 할지언정 그것을 감히 뉘더러 읽으라며 수많은 이들이 오가는 곳에 내 걸 것인가.

  글을 쓰는 방식과 목적이 글쓴이마다 천태만상인 것은 당연한 일이다. 위에 내가 긁적거린 것도 당연 내 자족적인 사고일 뿐이지, 저러한 사고와 궤를 달리하는 사람이 있다고 하여 그가 매문자라고 비난받는 것도 웃긴 일이고, 저 것과 다른 방식으로 쓰여진 글이라고 졸문, 잡문이 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저렇게라고 짜내지 아니하고서는 남 부끄럽지 않은 글 한 줄 못 쓰는 스스로의 무능력함이 한심스럽다. 
  블로그를 통해 자신의 글을 남에게 보이는 것 또한 마찬가지다. 블로거 100명이 있다면, 100가지의 운영 방침과 운영 목적이 나타나도 하등 이상하지 않다. 다만 낙취재에 글 한 줄을 올릴 때마다, 나 자신은 늘 저 위에 밝혀둔 관점에서 내 글을 읽어 보게 된다. 글쓴이로서의 조대는 무슨 글이든 마음 가는대로 쓰고 입력을 누르며 뿌듯해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공개리에 글 덩어리를 올려둔 이후, 독자로서 조대가 되어 그 글을 읽을 때마다 불만족과 부끄러움으로 낯을 붉히곤 하였던 것이다. 
  어떤 새로운 사유를 활자로 옮겼는가. 하잘 것 없고, 이미 많은 이들에게 공개된 내용을 그저 복기한 것에 지나지 않는게 아닌가. 나 자신만의 견해와 나 자신만의 생각 조차 없이 다른 웹이나 간행된 도서류나 문서류에서 내용을 빌어온 것은 대체 그 네이버 블로그에 늘상 이뤄지는 "퍼가염"과 뭐가 다르단 말인가. 그것을 더 난삽한 내 문장으로 바꾸고 더 모자란 내 식견을 덧붙여 100여줄이고 1000여줄이고 늘어놓는 것만큼 비생산적인 일은 어디있단 말인가. 차라리 그저 출전을 하나 적어놓고 "원하시는 분은 읽어보시라"고 하는 것이 훨씬 생산적이고 현명하지 않겠는가. 이는 내가 채워넣곤 하는 내용물이 부박함을 말하는 것이다. 늘상 글감이 됨직한 사유들은 사실 내 독자적인 것도 아니고, 그 가치가 공개할 만큼 빛나는 것도 아니었다. 이래서야 자기 복제적인 정보들로 양적인 팽창만 하고 있는 온라인상의 "정보 덩어리"에 애써 수고하여 무가치한 바이트를 조금 덧붙인 외에 어떤 의미가 있는가.

  무슨 글이든 편하게 쓸 수 있는 사람은 행복하다. 더구나 글감을 정돈하여 펴는데 재능이 있어서, 아주 한가로운 얘기조차도 주목받는 글로 정련할 수 있는 사람은 대단하다. (그렇다. 프로 작가는 "세탁소에 가져갈 빨랫감 목록조차 재미있게 쓸 수" 있는 사람들인지도 모른다.) 또한 지성의 놀라운 번뜩임이 넘쳐 흘러서 간혹 관심을 가지고 잠시 온라인 상에 글쓰기에 몰두하여 집단 지성에 한 켜 가치를 덧붙이는 굉장한 이들도 있다. 내용도 부박하고, 그것을 품고 소화시켜서 내공으로 만들 힘도 모자란 나와 같은 이는 그러한 이상에 견주어 더 노력하지 않으면 남의 지성을 가져와 자기복제하는 - 기생충스러운 글밖에는 쓸 수 없다. 하지만 단지 자족감을 더 높이기 위해 끝도 보이지 않는 노력을 들이는 것은 이미 취미와 여유의 영역에서 펼치는 지적 활동이라는 블로그 본연의 취지와 모순되는 것이다. 아주 극소수의 블로거라면 블로그에 글을 쓰는 것을 하나의 업으로 삼을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내 재능에 그에 미치지 않고 더구나 자족적인 글쓰기로 밥을 벌어 먹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 된다.
  그러므로 더 이상 남에게 내보이기 위한 글쓰기에는 자신감을 잃어버렸다.

  블로그들은 저마다 자신의 콘텐츠를 (고맙게도 무상으로) 불특정다수에게 내보이고 있다. 얼핏 모든 블로그는 공개된 미디어라는 착각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모든 블로그가 "불특정다수를 향하여, 그들에게 읽히기 위해 쓰여진 글"을 담고 있는 것은 아니다. 블로그라는 개념의 본연은 물론 온라인 상에서 개인이 구축할 수 있는 메스 미디어라고 생각하지만, 그런 본연과는 무관하게 블로그를 활용하는 이들도 많다. 후자의 이들이 올리는 글은 대체로 한정적인 수용력을 가진 글들이다. 익히 그 블로거에 익숙한 이들이 아니면 관심을 끌기 어렵거나, 심지어 이해하기 어려운 글들. 사실 그들의 블로그 활동은 "송출"이 아니라 한정적인 "소통"에 가깝다. 
  사실 블로고스피어의 대부분은 독자의 역할에 충실한 블로그들이나 혹은 전자와 후자 사이의 어디쯤에 놓인 회색의 블로그들로 메워져있다. 온전히 전자의 블로그 방침에 충실히 개인이나 혹은 소수가 운영하는 정련된 메스 미디어로서 기능하는 블로그는 손에 꼽을 정도로 적다. 소수가 불특정다수를 향하여 계속적으로 지식과 지성을 내보내는 것은 매우 어렵기 때문이리라. 그렇다고 독자로서의 블로그가 무가치한 것은 아니다. 일단 개인적 차원에서 그 블로거들은 온라인 상에서 다른 이들과 소통을 한다. 그 소통은 정보나 지식을 전파하는 (주로 글을 쓰고 보여주려는) 그룹과도 이루어지는 동시에, 횡적으로도 이루어진다. (사실 좋은 글을 자주 올리는 블로거는 또한 다른 좋은 글들을 찾아내 열독하는 착실한 독자들이다) 그들의 존재는 블로그라는 집단지성적 미디어가 기존의 미디어와 구별되는 중요한 요소다. 문자가 발견된 이래 출간하려고 하는(publishing) 이는 늘 존재해왔다. 그러나 그것에 대한 반응이 나타나는 형태는 천천히 진보해왔다. 출간에 대한 반향이 이렇게 예리해진 때가 이전에 있었을까. 이런 사회에서 도그마는 출현하기 어려워진다. 이것만으로도 독자로서 읽고, 반응하고, 소통하는 독자로서의 블로거는 늘 그 가치가 막대하다.
  이곳 또한 한 명의 블로그 열독자가 오늘의 페이지를 시작하는 서표의 구실을 하게 되리라.

  이글루스에 있었던 낙취재로부터 이곳으로 글마당을 옮겨온 것은 위와 같은 상황 때문이다. 사실 이글루스가 근래 돌아가는 사정 때문에 많은 기존 블로거들이 이탈하고 있지만 - 내 경우에는 더 이상 내 포스팅으로서 무엇인가를 도모할 수 있다는 자신감 내지는 믿음을 상실해버렸기 때문에, 이글루스의 전연령 개방 정책에는 전혀 영향을 받지 아니 하였다. 스스로 모자람을 느끼는데, 굳이 독자의 연령을 가리며 - 심지어는 수준 낮은 독자 반응이 꺼려서 블로그를 옮기겠는가. 기실 이글루스에서 블로그를 운영할 적에도 이글루스에 거처가 없거나 연고가 수상한 이들이 많이 왔었고, 반대로 이글루스에 오랫동안 글을 내보내던 나름 유명한 블로거가 한숨이 나오는 댓글로 나를 실망시킨 적도 많았다. 
  도리어 티스토리에 숨은 듯 자리를 잡으므로써, 보다 더 고르고 골라낸 양질의 블로그를 이 곳에 엮어 열독할 수 있게 되는 열락을 비밀스럽게 기대하고 있다. 누군가는 그렇게 얘기하지 않았던가 - 바보는 말하고 싶어 애태우지만, 현명한 이는 듣기 위해 애쓴다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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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06.24 10:11 [ ADDR : EDIT/ DEL : REPLY ]